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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특별코스

태조는 재위 3년(1394년) 8월에 한양을 새 도읍지로 최종 결정하고 그해 10월 천도를 단행하였다.
한양천도 이후 태조는 가장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였는데,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 터를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그 다음 해에 세웠다.

종묘는 창건 당시 7칸의 정전을 짓고, 좌우에는 익랑을 각각 2칸씩 이어 지었다.
종묘 정전은 태종, 세종대에 이르러 건축 형식이 정착되었다. 태종은 종묘 앞에 가산을 조성하여 종묘가 주변 언덕에 파묻혀 아늑한 기운이 깃들도록 한 다음 종묘의 건물 형식을 고쳤다.

한편 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또 다른 중심 건물은 영녕전으로, 종묘를 건설할 당시는 종묘 정전뿐이었다.
영녕전은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별묘인데, 세종 때 처음 건립되었다.

본래 종묘 정전에 다섯 신위를 모시기로 하였던 것인데, 그 뒤 다섯 신위 외에 다른 신위를 영녕전으로 옮기지 않는 불천위(不遷位)제도가 생겨, 종묘 정전에 모시는 신위의 수는 다섯 보다 더 많아지게 되었다.
모셔야 할 신위의 수가 늘어나자 칸수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 결과 종묘 정전 건물을 증축했다.

그 뒤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게 되어, 재건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지 못하다가 마침내 선조 41년(1608년) 1월에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다섯 달 뒤 광해군이 즉위하고 나서 완공하게 되었다.
이후 영조2년(1726년)에 4칸, 헌종2년(1836년)에 4칸을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인 19칸으로 정착되었다.

종묘는 건출물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제사상을 차리고 축문을 읽고 술은 올리는 제례 순서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연주와 춤이 뒤따르고 있다.
조상신을 만나는 즐거운 날이기 때문이다.

1년에 춘.하.추.동 납일 모두 5회의 정기적인 제례가 있었으나 현재는 5월 첫째주 일요일 한번에 한해 시민공개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종로3가역 인근이라 접근성이 매우 좋으며 조용하고 야생 너구리가 서식할 정도로 한적해서 사색과 명상의 장소로 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