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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특별코스

한양도성에는 우리 역사 전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발전시켜 온 축성기법과 성곽구조를 계승하였으며, 조선시대 성벽 축조 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처음 축조 당시의 모습은 물론이고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 성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600년 역사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것은 태조 5년(1396) 농한기인 겨울철 49일간, 이어서 추수기를 앞 둔 49일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할당하였다. 태조 때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 개축하였으며 이후에도 수 차례 정비하였다. 축성할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어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ㆍ주택ㆍ공공건물ㆍ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년 1·21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어,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일단 훼손된 문화재를 완벽하게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는 데에만 치중하여 오히려 주변 지형과 원 석재를 훼손하기도 했다.
한양도성은 2014년 현재 전체 구간의 70%, 총 12.8km(2014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을 중건하였지만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위치가 아니다.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지혜와 축성기술 등 무형의 자산을 제대로 발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