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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문화

천장과 부묘로 본 조선정치사

  • 관리자
  • 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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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왕릉의 천장 두가지 이유

조선 왕릉의 역사에서 왕릉이 천장(遷葬)된 사례가 적지 않은데, 조정 내에서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천장되었다

첫째는 풍수지리를 중요시 했던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상의 문제로 왕릉을 천장하기도 하였다

풍수지리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것은 세종의 영릉이었다. 세종이 처음으로 묻혔던 곳은 헌릉 서쪽에 위치하였다

문제는 당시에 풍수가 최양선이 ‘이곳은 절사손장자(絶嗣損長子:후손이 끊기고 장자를 잃는다.)할 땅이다.’라고

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었다  의정부와 예조에서 최양선을 벌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세종은 벌을 주지 않는 대신

나라의 대사에는 쓰지 않도록 하였다   하지만, 문종이 일찍 죽고 단종을 끝으로 후손이 끊겼으며, 세조의 장자인

의경와 예종의 장자인 인성대군이 일찍 죽는 등 여러 불행들이 닥쳐 왔기에 예종 때 세종의 왕릉을 오늘날의 자리인

여주로 이장하였다

둘째는 풍수적인 문제 이외에 간혹 한 사람의 뜻으로 인해 천장된 사례도 있었는데, 중종 때 김인로가 자신의

정적이었던 정광필을 제거하기 위하여 장경왕후의 희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내용인 즉슨, ‘산릉조성중 암반이 나왔는데, 암반을 파낸 자리에 국모를 안장한 것은 지기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암반이 나왔으나, 중종은 당시 길흉을 점쳐서 괜찮다 하였기에 그 자리에서 몇 자 아래로 옮겨 썼던 것이다

김안로는 천장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그의 뜻대로 천장을 하게 되었다

그 뒤 김안로 측에서는 관련자였던 정광필에 대한 처벌을 상소하였고, 결국 정광필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 뒤 중종의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뢍후는 장경왕후와 나란히 묻혀 있는 중종을 성종의 선릉선옆으로 천장했는데

이는 자신이 그 옆에 묻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새로 천장된 정릉에서는 장마 때면 물에 잠기곤 해서 문정왕후는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정릉과 멀리 떨어진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2.종묘 부묘의 원칙

담제후 길제(吉祭) 때에 부묘를 한다. 길제는 곧 종묘의 시향제(時享祭)이다

국조오례의』의 흉례 의식 중 부묘의에 부묘의 절차와 이에 따른 행례(行禮) 방식이 실려 있다

서운관에서 미리 계절을 격(隔)하고 길일을 가려서 예조에 보고하면, 예조에서 계문하고 유사(攸司)에

산고(散告)하여 직책에 따라 준비[供辦]하게 한다. 종묘에는 하루 전에 고하는데

찬품(饌品)과 행례는 고의(告儀) 즉 상시(常時)에 고하는 의식과 같다

혼전에 고할 때는 찬품과 행례는 삭망제(朔望祭)의 의식과 같이 한다.

신주가 종묘에 나아가면, 어가(御駕)가 출발할 것을 고한다

제사를 마치면 섭판사복이 요여(腰輿)를 문밖에 놓는다

종친 및 문무백관들이 시립위(侍立位)로 나아간다

차례로 시위하여 종묘의 외문(外門) 밖에 이르면

여러 향관(享官)들이 각각 조복을 갖추고 요여를 맞는다

대축(大祝)이 신주궤(神主匱)를 받들어 신여(神輿)에 안치한 후 종묘의

남문 밖 악차앞에 이르면 신주궤를 받들어 악좌(幄座)에 안치한다.

신관(晨祼)을 위해 5각(刻) 전에 궁위령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재실을 열고 신악(神幄)을 깨끗이 턴 뒤에

자리[筵]를 펴고 궤(几)를 설치한다. 3각 전에 여러 향관들이 각각 제복을 갖추고 각각 자리로 나아간다

왕이 나올 때 산선과 시위는 상시(常時)의 의식과 같이 한다

왕이 규를 잡은 다음 정문(正門)으로 들어간다

재랑(齋郞) 등이 신여를 모시고 정문으로 들어가서 부알위(祔謁位)에 이르면 대축이 궤(匱)를 받들어

욕위(褥位)에 안치하고, 궤를 열고 신주를 받들어 내어 부(趺) 위에 놓는다.

신주를 받들어 여에 안치한 다음 신실(新室)에 이르면 내시가 궤를 받들어 자리[座]에 놓고

대축이 신주를 받들어 자리에 안치하고 백저건(白紵巾)으로 덮는다

집사자가 책보를 받들고 들어가서 안(案)에 놓는다.

나머지 강신(降神)·궤식(匱食)·아헌(亞獻)·종헌(終獻)으로부터 칠사의 제사,공신의 제향, 음복·망예(望瘞)까지는

모두 시향제의 상의(常儀)와 같다. 거가환궁(車駕還宮)으로 부묘의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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